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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아시아의 도시이자 중국에 속한 특별행정구. 전신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포르투갈령 마카오였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마카오는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가 시행되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있다. 마카오는 몇몇 국가 대표팀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지고 있고 국제기구에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또다른 특별행정구인 홍콩과 바다 건너 멀지 않은 곳에 이웃하며 같은 광동어를 쓴다. 홍콩과의 큰 차이점은 홍콩이 영국 직할령으로 완전한 자치가 허락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가 중국 반환 이후 일국양제에 따라 최소 50년간 자치가 허용되는 것과는 달리 마카오는 1976년부터 포르투갈의 특수 영토(special territory)로서 속령에 준하는 자치권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처음 포르투갈이 차지했을 때는 중국 본토와 떨어진 섬이라서 해협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수백년간 퇴적을 거쳐 말 그대로 ‘반도’가 되어버린 마카오 반도와 그 남쪽의 타이파 섬, 콜로안 섬의 두 섬까지 마카오는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에는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 지역을 매립해(코타이) 두 섬이 사실상 붙었고 그 매립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지노와 호텔이 지금도 들어차고 있다. 대체로 마카오 반도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화된 지역, 코타이는 대형 카지노가 널찍하게 자리잡은 곳, 콜로안은 남중국과 포르투갈풍이 섞인 전원지역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인구 약 63만. 홍콩과 한 세트처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도시국가인 홍콩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홍콩은 울산광역시보다 좀 더 큰 크기지만, 마카오는 한국 광역시의 일개 구(행정구역) 수준의 넓이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작았는데 간척에 간척을 거듭해 그나마 좀 넓어진 것이다. 작은 면적을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 인구밀도는 상당히 높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아주 작은 행정단위에 불과하다. 홍콩과 직접 면적을 비교하면, 홍콩의 중심지인 홍콩 섬(78.59 km2)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역시 세계 최대 수준의 카지노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박과 유흥의 메카로 2007년 이미 라스베가스를 도박 매출에서 추월했고 그 격차는 해마다 크게 벌어지고 있다. 거기에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지어온 남유럽풍 고건축과 문화가 남아있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여러모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화폐는 파타카이지만 홍콩 달러가 파타카와 가치가 거의 같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홍콩 달러를 대신 사용하며 작은 식당이나 구멍가게에서도 홍콩 달러로 계산이 가능하다. 마카오 내에서는 홍콩 달러와 1:1의 가치로 사용이 가능한데, 정확히는 1홍콩 달러 = 1.03 마카오 파타카다. 국내에서는 마카오 파타카의 환전이 어려워 대부분 홍콩 달러를 들고 간다.

2017년 초대형 태풍 하토가 상륙해 코타이가 해일로 침수되고 전기와 물 그리고 가스 공급이 끊기는 등 괴멸적 타격을 입어 사실상 도시기능이 마비되었다. 마카오 경찰 및 소방당국만으로 역부족이라 인민해방군 해군 육전대(해병대)를 중심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투입되어 복구를 돕고 치안 유지를 도왔다.

2. 상징

2.1. 명칭

공식 명칭
정체 한자中華人民共和國澳門特別行政區[6]
간체 한자中华人民共和国澳门特别行政区
포르투갈어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 da República Popular da China
한국어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
약칭
정체澳門광동어Ou3mun4
간체澳门표준중국어Àomén
한국어마카오한자澳門 
澳门(오문)
영어Macao(공식)
Macau(민간)
일본어マカオ
포르투갈어Macau(공식)
Macao(고어)
에스페란토Makao(마카오)

이름의 유래는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당도했을 때 현지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주위에 있던 ‘아마 사원’이라는 대답인 ‘아마 까오(사원)’라는 말을 착각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마조각(媽祖閣)’을 잘못 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마조(媽祖)’는 중국 푸젠 성을 중심으로 하는 바닷가 지역에 거주하며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했던 바다의 여신이다.

마카오의 포르투갈어 표기는 Macau.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Macao가 쓰였다. 1911년에 포르투갈이 공식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정하면서[7] 강세가 없는 o의 발음 약화 현상을 반영해 라틴어 유래가 아닌 포르투갈어 단어의 강세 없는 o를 u로 고쳤는데 이에 따라 Macao가 Macau로 바뀌었다. ISO 코드가 MO인 것은 옛 철자법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옛 포르투갈어 표기인 Macao와 현재 포르투갈어 표기 Macau가 모두 옳은 표기이며, 2016년 1월부터 마카오 정부에서는 Macao를 공식 영어 명칭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도 여전히 Macau라는 표기를 선호하고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Macau를 표제어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영어와 포르투갈어에서 Macau라고 쓰든 Macao라고 쓰든 발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영어로는 머카우, 포르투갈어로는 마까우 정도의 발음. 한국어 ‘마카오’나 일본어 ‘マカオ’는 Macao라는 철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2005년 제정된 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마카우’가 된다.

통칭과 원어명이 대강 비슷하기라도 한 홍콩(광동어 ‘헝껑’/표준중국어 ‘샹깡’)과 달리, 마카오라는 이름은 중국어 명칭과는 아예 달라서, 중국어에서는 澳門/澳门이라고 쓰고 오우문(광동어)/아오먼(표준중국어) 비슷하게 발음된다. 말 그대로 ‘항구의 문’이라는 뜻.

2.2. 깃발

현재 마카오(특별행정구)의 깃발은 1993년 3월 3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정된 것이다.

깃발의 초록색은 번영을 의미하며[8] 연꽃은 마카오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 개의 꽃잎은 마카오를 구성하는 세 개의 큰 지역인 마카오 반도, 타이파 섬, 콜로안 섬을 뜻하며 연꽃 앞에 있는 선은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섬을 잇는 카르발류 총독 대교(Ponte Governador Nobre de Carvalho)와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항만으로서의 마카오의 위치와 역할을 뜻한다. 다섯 개의 노란색 별은 중국오성홍기의 다섯 개 별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카오가 중국의 영토임을 상징한다.


마카오 반환 이전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는 이렇게 독자적인 깃발이 있기는 했으나 이는 엄밀히는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의 깃발이고, ‘포르투갈령 마카오’ 그 자체를 상징하는 깃발은 따로 없이 포르투갈 국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2.3. 노래

마카오를 상징하는 공식적 지위의 노래는 따로 없다. 마카오 대표팀이 경기를 치르는 경우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 진행곡을 연주한다.

3. 역사

옆동네 홍콩보다 300여 년이나 빠른 1542년(명나라 시대)에 포르투갈의 교역 기지인 포르투갈령 마카오가 되었으며 대 중국 수출입 거점이었다.

포르투갈이 중국에게서 마카오를 얻어낸 것을 “포르투갈인들이 해적을 퇴치한 공로로 명나라황제가 마카오를 상으로 떼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이건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창작한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은 1553년에 포르투갈이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체류하게 된 것이 이 도시의 시초라고 한다. 당시 명나라의 황제 가정제는 불로장생에 집착해 채향사(採香使)들을 시켜 방방곡곡에서 용연향을 구하게 했는데, 전세계에 연락선이 있는 포르투갈 상인들은 용연향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황제의 환심을 샀다. 1557년부터는 매년 뇌물을 주어 거점 구축에 나섰고,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과 그 뒤를 이은 청나라 조정도 매년 500냥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체류를 공식 허용하게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연안에 왜구나 중국인 해적들이 들끓어서 골치를 앓았는데 이때의 마카오는 일개 작은 섬에 불과한지라 작은 섬 몇 개나 떼주고 귀찮은 일 없애자는 식으로 영구 임대안을 승인했고 그 이후부터 뇌물이 아닌 정식 임대료, 즉 명 조정에 대해 세금을 지불하고 대신 마카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포르투갈에 주권이 이양된 건 아니었다.[9]

중국은 마카오 이후로는 수백년 간 서양인들에게 이런 창구를 추가로 더 내주려 하지 않았고, 마카오는 중국 대륙 내의 주요 무역거점으로 써먹을 수 있는 땅이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탐을 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명청교체기 와중에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침공해서 거의 함락할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방교역에 있어서 마카오를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것은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는데, 네덜란드인들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포르투갈인들은 예수회수도자들까지 전부 다 동원해서 맹렬히 저항했다.

수학에 능통했던 예수회 수도자들이 계산하고 지휘한(!) 포격이 네덜란드인들을 강타하면서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고 착각한 네덜란드인들은 도망간다. 지금도 이 전쟁 당시 포격했던 몬테 요새가 마카오의 관광지로 남아있다. 당시 네덜란드는 영국, 스페인과 더불어 해양 제국으로서 맹위를 떨친 나라였다.[10]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하자 마카오는 전성기를 맞았다. 양국의 직접적인 조공무역이 막힌 빈틈을 파고들어 마카오-나가사키중개무역을 했고 큰 이득을 얻었다. 명나라와 만주의 청나라가 싸우기 시작하자 양쪽에 홍이포 등 무기를 팔아서 이득을 보았다.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고 대만의 정씨 왕국을 말려죽이기 위해 강력한 해금령을 내리자 마카오도 타격을 입을 뻔했지만 강희제의 신임을 받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덕분에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마카오의 위상은 갈수록 약해졌다. 마카오는 수심이 얕아 대항해시대 초반의 범선은 드나들 수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거대한 배들이 정박하기는 힘들었다. 포르투갈이 근대로 가면서 이류 열강으로 떨어지며 상업도 쇠퇴했다. 결정타는 옆에 영국령 홍콩이 세워진 것이었지만 그 전에도 마카오는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1842년영국이 아편전쟁을 통해 청나라를 박살내자 서양 열강들이 청나라를 점점 호구로 보기 시작하고 청나라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해 수많은 이권을 뜯어냈다. 포르투갈도 이에 편승해 1851년과 1864년에 원래 마카오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무인도인 타이파와 콜로안을 점거하고 1887년에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을 맺어 마카오를 정식으로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그러나 1840년에 포르투갈보다 훨씬 강한 나라였던 영국이 마카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홍콩 섬을 난징 조약으로 따내고, 중국과 유럽 국가들의 직접 교역 시대가 열리면서 홍콩이 급속히 성장한 것과 달리 쇠퇴하는 본국처럼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점차 쇠퇴한다. 이때의 역사적인 배경에 라틴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까지 더해져 마카오 하면 깔끔하고 금융업 위주의 선진국인 홍콩과 달리 북한 공작원 및 중공 스파이가 득실거리고 마피아가 판치는 무법천지 정도로 인식하는 어르신들도 아직 많다. 실제로도 19세기~20세기 중후반까지의 마카오는 창구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홍콩에 밀리고 도박과 매춘으로 생계를 잇는 퇴락한 도시였다. 1847년 도박을 합법화하자마자 200개가 넘는 도박장이 들어섰고 지금은 관광지가 된 펠리시다데 거리는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거대한 홍등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에 속한 영국과 달리 포르투갈이 일단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홍콩과 광저우가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때도 마카오는 무사했는데 이때 그쪽 지역의 피난민이 몰려와 인구가 잠깐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 정부 하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편이었기에 마카오를 통해 일본에 석유를 약간 팔기도 했었고, 이 때문에 미군의 폭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일제도 중화민국을 압박하기 위해 마카오 영사관을 설치하고 중국의 항일 활동을 감시했고, 물론 중국인들의 일제 인사에 대한 습격도 있었다. 또 대횡금 섬을 일본군이 점령하는 등 일본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11]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포르투갈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주를 우려했으나 서방과의 정면 대결을 바라지는 않던 중국은 이곳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포르투갈의 영유권을 존중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홍위병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점령을 시도했으나 포르투갈이 아무리 약체화되었어도 이딴 오합지졸 민간인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서 군을 동원해 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카오 주민들 역시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한족중국인이기에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마카오에서도 마오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중국 공산당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당시 반공주의가 강렬했던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 역시 반공주의적 입장을 취하며 이들을 탄압하다가 1966년의 12.3 사건같은 중국계 주민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폭동 정도야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와 마카오 주둔 포르투갈군이 진압했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포르투갈에 ‘당장 사죄하고 주동자들에 보상하지 않으면 마카오로 쳐들어가겠다’고 협박했고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마카오를 해상봉쇄하는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 이 때 포르투갈은 중국과 전쟁을 벌일 준비를 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폭동 진압에 대해 사죄하고 당시 총독과 관련 경찰을 파면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사실 총력전을 벌여도 중국과 싸워 승산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인데 더구나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으로 이미 거의 모든 군사력이 아프리카에 향해 있었던데다 독재 국가의 식민지 관련 이슈라 NATO를 비롯한 서방권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미 비슷한 과정으로 고아를 인도에 내준 경험을 볼 때 전쟁하면 도저히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2]

이 일로 굴욕을 당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는 반공 색채를 누그러뜨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던 본국의 방침도 무시하고(당시 포르투갈은 중화민국과 수교한 상태였다) 중화인민공화국과 교류하며 중국 국민당 관련 기관의 활동을 금지하는 등 대륙 중국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실상 이 일로 포르투갈의 마카오에 대한 주권은 끝장났다고 평가할 정도.출처

마카오뿐 아니라 전 세계 식민지를 어거지로 유지하려고 독립운동을 틀어막던 포르투갈 정부는 결국 1974년에 끝이 없는 독립탄압 전쟁에 염증을 느낀 군부가 일으킨 카네이션 혁명 이후 모든 원거리 식민지를 자진해서 포기하기로 했고 당시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같이 중국에 반환하기로 했는데, 오히려 중국이 돌려받는 것을 거부했다. 

1970년 당시는 아직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중국이 아닌 대만 섬의 중화민국을 유일한 정통 중국으로 승인하던 상황이었고 공산중국은 죽의 장막 건너로 얼마 없는 서방과의 협상창구 마카오를 일단 놔두고 활용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영국이 홍콩 전체의 반환을 거부하고 신계 외곽만 반환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협상이 길어졌고, 중국은 이 문제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포르투갈과 중국은 마카오를 ‘중국 땅이지만 포르투갈 정부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곳’으로 해석하는 데 합의하여[13] 언젠가 반환이 이뤄져야 하는 데는 양국이 입장의 일치를 보였고, 포르투갈 정부도 이에 근거해 1976년부터 마카오 정부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이양했다.

영국이 전향적으로 홍콩 전체를 반환하고 중국이 특별 행정구역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한 1984년 중영공동선언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1987년에 또 다시 반환 의사를 표명하였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받아들임으로써 1987년3월 26일에 홍콩과 유사한 일국양제의 논리로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함을 규정한 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마카오는 1999년12월 20일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었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최소 2049년까지는 포르투갈령 당시 경제, 정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그와는 별도로 사회주의 체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홍콩처럼 마카오도 사실상 본토 사회주의 체제가 영구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를 어기면 포르투갈 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다. 다만 현대까지도 그럭저럭 강대국인 영국과 달리 유럽에서도 소국인 포르투갈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국에 직접 압력을 가할 수단이 거의 없는 만큼, 그 방법은 마카오 거주자 및 자본의 일괄 철수와 같은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홍콩 및 광동 성 정부와 공동으로 마카오 옆 주하이시의 일부인 헝친다오를 개발하고 있다. 마카오 대학의 캠퍼스를 주하이 시가 임대 형식으로 떼어줬는데 실질적으로 영구 임대로 보면 되며 점진적으로 마카오의 확장에 헝친다오를 적극 이용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사회주의 체제 내 경제특구인 선전이나 주하이보다 별도 국가로 취급되는 자본주의 특별행정구들인 홍콩과 마카오가 더 돈이 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는 중국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땅 일부를 떼어 내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곳으로 만든 최초의 사례라 볼 수 있다. 

물론 자치나 민주주의와는 별 상관 없는 별도 관세구역 및 자본주의 경제체제 전면 적용지역[14]인데 하는 김에 사실상의 자치를 허용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사실상 자치가 중앙에서 직접 특별행정구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더 효율적이다.

포르투갈 정부는 옛 식민지에 이미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주민 및 그 후손 전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하였다. 특히 포르투갈 국적법이 개정된 1981년 11월 19일 이전에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혈통과 상관없이 포르투갈 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유럽 연합 소속국인 포르투갈 국적이 있으면 사실상 유럽 어디서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만큼 이는 상당한 특혜를 부여한 것이다.

포르투갈이 마카오인 모두에게 국적을 부여한 이유에 관한 설 중 하나는 마카오보다 앞서 1970년대 카네이션 혁명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독립할 당시, 3대 이내 포르투갈 본토 태생의 선조가 있는 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식민지 전쟁 당시 포르투갈군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던 식민지 태생 주민들이 독립 후 내전이 발발하면서 반역자로 몰려 대거 숙청당하는 학살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 주민들에게 국적을 주는 방향으로 선회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 이후 오랜 세월동안 역사적으로 심각한 인구부족에 시달렸는데 경제력이나 시민 의식이 매우 낙후된 아프리카 식민지들과 달리 본국 못지않게 시민 의식이 높고 경제력이 있는데다 포르투갈 본국과 문화적 연대가 있는 마카오인들은 잠재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이민자가 될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지금도 유럽 연합역내에서 부유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투자이민을 가장 많이 받아주는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어쨌든 이에 따라 반환 이전 마카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43만 명[15]은 반환 이후에도 포르투갈 국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는데 이는 영국이 홍콩 주민들을 외면한 것과 비교되는 처사로 평가되고 있다.[16]

마카오 반환식 영상이다. 2년 전 홍콩에서도 유사한 의식을 거행했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일본에서부터 브라질까지 세계 각지를 항해하며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1999년 12월 20일 마지막 동아시아 거점을 반환하면서 이들의 제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중국 반환 이후, 공산당 정부가 인근 도시 주하이에 인민해방군을 주둔시키고, 포르투갈령 시대에 막장 치안으로 악명높았던 마카오에서 범죄 타파에 나섰고, 현재 치안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 물론 카지노로 슬슬 이름을 날리면서 고객 끌어모으려고 마카오 주민들 스스로 치안을 정리한 점도 있지만.(…) 또한 배후의 경제특별구인 광둥 성주하이 시와 연계해 카지노 일변도에서 조금씩 벗어나 여러 제조업도 가동되고 있다. 시진핑이 반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 마카오 카지노들의 숨통을 억죄는 판국에 카지노만 고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유력산업은 여전히 카지노인데 대상이 영미권 관광객으로 바뀌었다. 2006년 홍콩을 처음 1인당 GDP에서 추월하였으며[17], 현재는 관광객 수조차 동등한 수준까지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는 스위스를 따돌리고 1인당 소득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흠좀무. 현재 마카오의 1인당 GDP가 한화 1억원 정도니 말 다 했다.

4. 정치

홍콩과 마찬가지로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이 헌법 역할을 하며,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별도 관세 및 경제구역에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이 인정되고 있고 홍콩과 같이 삼권분립이 되어 있다. 

그러나 홍콩처럼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 즉 베이징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홍콩과 달리 대륙과의 갈등이 적은 편이라 아직 홍콩만큼 이 부분에서 문제가 두드러지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홍콩과 마찬가지로 자치권과는 별개로 중국과 포르투갈 정부의 합의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는 영구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마카오 특별행정구 별도 관세 지대로 분류하고 당연히 대륙하고는 세법부터 다르다.

마카오의 정치 체계는 포르투갈을 따라해서 유럽식 체계에 더 가깝다. 이웃 홍콩이 영국식인 것과 반대. 그리고 법 체계도 대륙법을 따른다. 이웃 홍콩은 당연히 영미법을 따르며 국적 부여도 방식이 달라 마카오는 출생 당시 부모의 국적이 마카오인이어야 마카오 특별행정구 시민권을 부여하고 이주 후 2세대에게도 자동으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영주권이 나오지 않았다.[18] 그래서 마카오에 거주하는 실제 인구의 90% 이상인 중국 대륙 출신자들의 경우 중국 국적자들이다.

4.1. 입법부

입법부는 입법회(澳門立法會, Assembleia Legislativa de Macau)가 있다. 총 33석 중 14석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12명은 직능 선거구의 제한된 유권자들 사이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7명은 마카오 행정장관에 의해 임명된다. 선거에서는 홍콩에 비해서 친중파 정당들의 지지율이 좀 더 높은 편으로, 2017년 선거에서는 33석 중 29석을 친중파 의원들이, 4석을 민주파 의원들이 차지했으며 직접선거 득표율로 비교하면 친중파 정당들이 68%, 민주파 정당들이 24% 정도를 차지한다.

4.2. 행정부

  • 마카오/행정조직 참조.

행정부의 수반인 마카오 행정장관(澳門特別行政區行政長官, Chefe do Executivo da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은 400명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선으로 선출되며 각 직업별로 위원회 위원 수가 할당된 직능선거구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진다. 이 위원회 위원들은 대부분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지만 유권자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2014년 당시 5448명출처) 행정장관은 무소속이어야 하며 임기는 5년에 1회의 연임이 가능하다. 임명권자는 중국 국무원 총리이지만 임명장 주는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공산당이 인정하는 친중파 인사가 당선된다는 비판을 들어도 일단 민주파 등 공산당이 불편해하는 여러 후보들이 나오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와는 달리 마카오 행정장관 선거는 출마자가 적다. 지금까지 치러진 4번의 선거 중 1번만이 후보가 2명 이상이었고, 나머지는 1명만이 출마해 찬반투표를 하였다.

4.3. 사법부

사법에서도 중국 대륙과 달리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과 마카오 기본법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서 중국 본토의 법률은 특수한 경우[19]를 제외하고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대륙법 체계를 따르며, 최고법원인 종심법원(終審法院, Tribunal de Última Instância)과 2심법원인 중급법원(中級法院, Tribunal de Segunda Instância)과 1심법원인 초급법원(初級法院, Tribunal Judicial de Base)이 있다. 법률 해석도 마카오 종심법원에서 담당하지만, 마카오의 헌법인 마카오 기본법의 해석 등은 중국 본토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 마카오에는 2심인 고등법원(高等法院)까지만 있었고 리스본에 있는 포르투갈 대법원(Supremo Tribunal de Justiça)에서 최종심을 맡았으나 대법원 상고를 할 수 있는 사건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20] 사실상 고등법원이 최종심이었는데, 반환 이후 마카오에 새로운 대법원을 세운 것이다. 사법부 수장인 종심법원 원장은 행정장관이 지명하고 입법회의 동의를 얻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임명한다. 종심법원 원장은 반드시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국적을 갖지 않는 마카오인이어야 한다.

5. 마카오인

  • 마카오인 참조

6. 언어

마카오의 공용어는 중국어(사실상 광동어)와 포르투갈어로 표지판이나 책, 공문서 등에는 두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는 포르투갈어만이 공용어였지만 1976년에 자치권이 주어진 이후로는 공용어에 대해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다가 1989년에 입법, 사법 분야의 문서를 포르투갈어와 함께 중국어로도 작성하도록 규정했으며, 1991년에는 중국어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1999년부터 시행된 마카오 기본법에서도 문구만 바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6.1. 중국어/

중국어는 마카오의 공용어 중 하나로, 표준 방언은 엄밀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광동어가 널리 쓰인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마카오인 중 95%가 일상 언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며, 그 중 대부분(전체 인구 대비 85%)이 광동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한다.

표준중국어(보통화)는 반환 이후 의무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보통화가 모어인 화자는 매우 적고(전체 인구 대비 3.2%) 생활 회화에서 널리 쓰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청년 세대는 교육의 영향으로 보통화로 소통이 가능하다. 광동어와 표준중국어 외 중국어 방언(주로 민남어 등)을 일상 언어로 쓰는 화자는 전체 인구 대비 6% 정도..

문자는 한국, 대만, 홍콩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정체자 한자를 쓰고 있다. 다만 의무교육에서의 표준중국어(보통화) 과목에서 홍콩이 정체자로 교육하는 것과 달리 마카오는 간체자로 교육한다.

6.2. 포르투갈어

10% 정도의 마카오 원주민인 마카오인(마카이엔사, 마카니즈)[21]들은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한국에서 포르투갈어는 브라질식 포르투갈어가 대세지만 마카오의 포르투갈어는 유럽식 포르투갈어에 가깝다. 물론 남미 포어가 유럽 포어에 비해 영향력이 크다보니 젊은 세대는 대세인 남미 포어에도 관심이 높다.

아직 구 식민모국의 언어인 영어가 많이 쓰이는 홍콩과 달리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어의 입지는 그리 높지 않으며 사용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포르투갈어를 일상 언어로 쓰는 사람들은 전체 마카오 인구 대비 0.6%로 영어보다도 적고(…) 의무교육에서 아예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마저 있을 정도이다. 절대다수 주민이 중국 본토 출신이고 중국으로 반환된 오늘날에는 마카오 인구 중 포르투갈 혈통은 2%도 안 되는데다 원주민인 중국계 마카오인들의 숫자도 대륙인들보다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영어 못 쓰면 일자리 질이 낮아지는 등 난감한 경우가 많은 홍콩과 달리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를 못 써도 난감해지는 경우가 적다. 주변에 포르투갈어 쓰는 나라가 없다보니 밖에 나가 쓸 일이 적은 것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여전히 포르투갈어는 공용어이고 (근대 이전부터 마카오에 거주한)중국계 마카오인이나 포르투갈계 마카오인을 중심으로 아직 많은 마카오인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문서 등은 영어/포르투갈어가 중국어와 함께 병기되니 포르투갈어만 알아도 사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그 외에도 가톨릭을 믿는 중국계 원주민인 마카오인들은 아직도 종교 언어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을 광동 출신 대륙인들과 구별하는 아이덴티티 비슷하게 삼고 있다. 포르투갈이 허접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마카오인의 인구가 대륙 이주민에 비해 터무니없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중일전쟁 등 중국의 혼란만 없었다면 마카오의 인구는 20~30만 명 선이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어 사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근대 이전부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마카오 반도에서는 아직도 포르투갈어를 많이 쓴다. 미국 및 중국 본토의 자본으로 개발된 코타이-타이파 지구에서는 포르투갈어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편이며 되려 표준중국어나 영어가 잘 통한다.

아시아에서 굉장히 드문 포르투갈어 사용 지역인 만큼 중국은 마카오를 통해 멀리 떨어진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와의 경제 협력을 진전하고자 한다. 현재에는 중국의 일대일로의 영향으로 마카오는 물론 중국 본토에서도 포르투갈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정작 마카오 안에서 포르투갈어 사용자가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소수이지만 마카오에서 변형된 포르투갈어인 마카오어도 사용된다. 크리올어의 일종으로서 그들 말로는 Patuá라고 하는데 불어로 사투리를 의미하는 Patois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5,000명의 구사자 중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50명에 불과해서 소멸위기에 처해 있고 마카오에선 마카오어를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다.

6.3. 기타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의 범용성이 영어에 비해 떨어지다보니 포르투갈어보다 차라리 영어를 배우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 미국 자본이 코타이를 개발한 등의 이유로 이웃 홍콩과는 달리 미국식 영어를 주로 공부한다. 이름도 영문식 이름이 대부분이다. 특히 2000년을 기점으로 매립지인 코타이에 미국의 라스베가스, 뉴저지 카지노 자본들과 중국 회사들, 홍콩과 대만의 회사들이 합작으로 투자하여 대규모 리조트를 만들며 현재 타이파 섬과 코타이는 영어가 잘 통한다. 미국의 라스베가스 자본이 중국 자본과 함께 들어온 코타이와 타이파 섬의 경우 미국식 영어가 통용되고 표기 등이 미국식을 따른다. 샌즈 등의 임직원들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영어를 잘 한다. 아예 영어를 일상언어로 쓰는 사람들(전체 인구 대비 1.5%)이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보다도 많을 정도.

영어가 아직까지 안 통하는 쪽은 택시 및 버스, 그리고 마카오 반도로 이쪽은 표준중국어도 잘 안 먹힌다. 알아듣기는 하는데 대답은 광동어로 하고, 몇몇 표준중국어 단어는 아예 못 알아 먹는다.

과거에는 영어가 잘 안통해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광동어/포르투갈어를 모르면 아예 여행이 안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미국 자본 유치와 마카오 특별행정구 및 중국 중앙 정부의 영어/보통화 공용으로 현재는 마카오 반도 일부만 빼면 영어 통용이 원활한 편이다. 특히 젊은 층은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쓴다. 바로 앞이 영어가 공용어인 홍콩이고 미국 문화가 마카오에서도 인기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려는 젊은 층이 많아 비영어권 중 가장 영어를 잘 하게 되었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선 광동어나 포르투갈어를 모르고 영어만 써도 뭐 찾아가거나 할 때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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